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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t Garten 2. 안개 저편, 사무실 본문

소설/Mist Garten

Mist Garten 2. 안개 저편, 사무실

Bild&Füller 2017. 3. 3. 00:21

- 남자, 그리고 아이.








미궁과도 같은 안개속에서, 돌파구를 찾기란 도저히 무리다.


자신은 과연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 있을까. 마음 한켠에선 이미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난 아마 여기서 죽을거야.

엉망진창이 된 꼴을 하고 바닥에 주저앉으며, 그만 헛웃음이 터져나오는 입을 손으로 가렸다.

허무하다. 그동안 살기위해 아득바득 이갈며 몸부림친 지난 날들의 고생은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익숙한 손놀림으로 양복 자켓 안주머니를 뒤져 담배갑을 찾았지만, 곧 어제 저녁 때 핀걸 마지막으로 담배가 동이 났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갑자기 문득 서러워져 눈물이 핑 돌았다. 자신은, 나는, 아직 아무것도 해낸 것이 없는데. 그 무엇하나 이룬 게 없는데. 보잘것 없는 놈은 보잘것 없는 채로 죽는게 자연의 섭리라는 건가. 그렇다면 그건, 얼마나 잔인한 운명인건지.

적어도..적어도...



"....소중한 사람 한명 정돈...만들고 떠날 기회같은 건 주지 않는 거냐고......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친구놈이 여자 소개해준다 했을 때 거절하는 게 아니었는데. 웃겼다. 매우 웃기긴 한데 알 수 없는 눈물이 자꾸만 시야를 흐리게 만들더니 서러운 흐느낌이 터져나왔다. 가만히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 만큼, 두렵고도 외로운 순간이 어디 있겠느냐고. 쭈그려 울고 있는 남자의 머리 위로 작은 그림자가 진건 바로 그 다음 순간이었다.




"아저씨."




정말 예상치 못했던 어린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남자는 곧장 고개를 들어 제앞에 선 존재를 쳐다보았다.

아직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금발의 어린 남자아이.

그 아이는 뚫어져라 자신을 내려다보더니,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곤 물었다.



"......울어요?"



눈물이 범벅된 얼굴을 한 채, 남자는 멍한 표정으로 아이를 쳐다보았다. 

어린애..? 어린애가 왜 이런 위험한 곳에 있는거야. 남자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아이의 부모로 추정되는 어른은 커녕, 이 소년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왜 이곳에 있어. 어서 도망가. 여긴....위험한 곳이야."



울어서 잔뜩 잠겨버린 목소리로 남자가 작게 말을 건네자, 아이는 주위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갈 데가 없어서 여기까지 왔어. 안개 속에서 엄마아빠 손잡고 모두들이랑 같이 걷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하나 둘 사라지더니 나 혼자만 남은 거야. 눈앞에 보이는 건 이 건물이었고. 그래서 안에 들어왔어.

아저씨는..왜 도망 안가고 여기에 있어요?"



남자는 입을 꾸욱 다물었다.

아이의 말에 무어라 대답해줘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고개를 떨군 채로 말없이 앉아있는 남자에게로 아이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있잖아, 아저씨는...아이가 말을 건네려 할 때, 갑자기 탕탕탕탕탕탕-!! 하고 굳게 잠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실내를 울려 두사람의 몸이 흠칫 굳었다. 마치 거기에 있는 거 다 안다는 듯 쉴새없이 문짝을 두들기는 소리에, 덜덜 이를 부딪히던 남자는 두귀를 막으며 몸을 더욱 움츠렸다.



"제발 가....그만 좀 해..! 날 내버려둬, 이만하면 됐잖아!! 제발 좀 꺼져, 꺼지란 말이야-!!!"



 줄곧,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와중이었다.

애초부터 남자는 이곳에서 살아나가기를 포기했다. 눈앞에서 두피가 뜯기고, 내장이 터지고, 잔뜩 피를 토하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제게 손을 뻗는 회사동료들의 모습을 보았던 그 때부터, 남자는 자신의 생명또한 얼마 남지 않음을 짐작하고 있었다.

되도록이면 고통없이, 최대한 빠르게 죽기만을 도모하고 있던 남자는, 이상하게도 저를 죽이지 않고 주변만을 뱅뱅 맴돌며- 마치 갖고 놀기라도 하듯 정신적으로 자신을 이리 괴롭혀대는 존재가 미치도록 끔찍했고 싫었다. 

이럴거면 빨리 죽여달란 말이야...안쓰러울 정도로 벌벌 떨며 온몸을 감싸안는 남자를 가만히 지켜보던 아이는 고개를 돌렸다. 문은 이제 곧 있으면, 부서질 것처럼 보였다.



"....저게 무서워서, 이제껏 여기 숨어계셨던 거예요?"


"...."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그 어떤것도 시도해보지 않은 채로, 그저 이대로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죽기만을 기다렸다는 거예요?"


"....."



아이의 물음에도 남자는 대답없이 히끅거렸다.

초등학생이라곤 생각도 못할정도로 차가운 눈빛을 하며, 아이는 남자를 향해 말을 내뱉었다.



"..한심한 사람이네."


"......"


"어른들은 별볼일 없지. 언제나 말만 번지르르. 실제로 해내는 일같은건 아무것도 없는데,

바보같은 아이들은 항상 그런 쓸모없는 어른들을 믿고 기댈 수 밖에 없어. 어른들과는 달리, 우린 힘이 없으니까.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어른들과는 달리, 연약한 우리는 그런 힘이 없으니까."



남자의 떨림이 멎었다.

아이의 말을 듣고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던 남자는, 서서히 손을 내리고 똑바로 시선을 들어 아이를 올려다보았다.

여타의 초등학생들과는 달리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긴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는 분명히 어린 아이였다. 아직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낼 수 없는, 어른의 힘과 도움이 필요한 연약하디 연약한 존재.

지켜주어야만 하는 존재.

그런 존재가, 왜 하필 모든 걸 자포자기한 이 순간에 제 눈앞에 나타났는지.

쾅 쾅 쾅-

문은, 이제 얼마 못가 부서진다.

남자는 시선을 돌려 무언가를 찾더니, 주변에 굴러다니던 철근을 우연치 않게 발견해 손에 꾹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의 등 뒤로 아이를 세워, 남자는 제법 비장한 눈으로 문을 노려보며 철근을 두손으로 꽉 쥐었다.



"괘...괜찮아...."



울음이 섞여 한껏 떨리는 목소리로, 남자는 아이에게 그리 말을 건넸다. 괜찮아..다 괜찮아..

마치 자신에게 거는 주문인마냥 한동안 중얼거림을 반복하던 그는, 이내 콰앙-!!!! 하는 굉음과 함께 무너지는 문 너머를 쳐다보며 히익, 신음을 삼켰다.

자욱한 안개너머로 보이는 흐릿한 인영은 자신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존재.

삐그덕- 기이한 동작으로 고개를 기울인 형체는 반갑다는 듯 남자를 향해 손짓을 까딱, 했다. 이리와- 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남자는 눈물 콧물을 줄줄 흘려대며 사시나무처럼 온몸을 덜덜 떨어댔다.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하지만 이토록 무서움에도 물러설 수 없는 건-

등 뒤의 작은 생명이, 아직 살아 숨쉬고 있었기에.

힘도 없고, 보잘 것 없고, 별 쓸모 없는 어른이라 해도,

그래도 어른이니까.

나는 해야만 해.

내가 일어서지 않으면,

내가 맞서지 않으면-




"그르르르...."


"...네 상대는 나다, 이 개새끼야-!!!!!"




내가 변하지 않는다면-


이 아이를 지켜줄 사람은 정말 더는 남아있지 않게 되니까.


















비틀-.

피가 철철 흐르는 몸을 기우뚱거리면서도, 남자는 결코 쓰러지지 않았다.



".....내가...지켜줄게."



온 몸에 생채기가 나고 뱃가죽에 구멍이 뚫렸음에도, 남자는 아이를 지키고 선 등을 결코 치우지 않았다.



"괜찮아...걱정하지마...."



이마에 흐르는 피 때문에 한쪽 눈을 제대로 치켜뜨지 못함에도, 남자는 눈앞의 적을 주시하는 것을 절대 멈추지 않았다.

덜덜 떨고 있는 몸은 여전한데도, 붉게 물든 눈가에 흐르고 있는 눈물마저 현저한데도 불구하고,

남자는 두손에 쥔 무기를 절대로 놓지 않았다.




"내가 지켜줄게......."




그동안 온몸을 잠식하던 공포와 맞서 결국 이겨낸 남자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는 눈을 하고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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