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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ret room
아이의 눈에는 그 모습이 참으로 처연하게 보였다.남자는 무엇을 지키고 싶었던 걸까.그토록 온몸이 갈기갈기 찢기면서도, 아까까지의 두려워하던 기색은 대체 어디로 갔는지 남자는 너덜너덜해진 두손으로 끝까지 무기를 붙잡고 제앞에 서있었다.지키고 싶었던 건, 아이의 생명인가.아니면 무너지기 일보직전인 자신의 신념인가. "......" 한동안 복도에는 발걸음 소리밖에 울리지않았다.오로지 앞만 주시하며 비척비척- 힘겨운 걸음을 옮기던 남자는, 걷는 것을 멈추고는 자신의 뒤를 돌아보았다. ".....왜....계속 따라와?" 남자를 따라 걸음을 멈춘 아이는, 그를 올려다보며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절 지켜주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아저씨 곁에 있을거예요. 무미건조하게 아이가 내뱉는 말을 듣고, 남자는 헛웃음을..
- 남자, 그리고 아이. 미궁과도 같은 안개속에서, 돌파구를 찾기란 도저히 무리다. 자신은 과연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 있을까. 마음 한켠에선 이미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난 아마 여기서 죽을거야.엉망진창이 된 꼴을 하고 바닥에 주저앉으며, 그만 헛웃음이 터져나오는 입을 손으로 가렸다.허무하다. 그동안 살기위해 아득바득 이갈며 몸부림친 지난 날들의 고생은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익숙한 손놀림으로 양복 자켓 안주머니를 뒤져 담배갑을 찾았지만, 곧 어제 저녁 때 핀걸 마지막으로 담배가 동이 났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갑자기 문득 서러워져 눈물이 핑 돌았다. 자신은, 나는, 아직 아무것도 해낸 것이 없는데. 그 무엇하나 이룬 게 없는데. 보잘것 없는 놈은 보잘것 없는 채로 죽..
시체가 썩는 역겨운 냄새가 사방에 진동하고, 절로 코를 틀어쥐게 만드는 악취 속에서- 잿더미를 뒤져가며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생존자의 흔적을 쫓던 구조대원은, 저 멀리서 터벅터벅 걸어오는 누군가의 인영을 발견하고 반사적으로 그쪽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누구냐-!!!!" 걸어오던 움직임이 잠시 우뚝 멈췄다.그 순간 구조대원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살아있는 사람은 커녕 죽은 자들도 그 시신조차 온전히 유지할 수 없다는 이 죽음의 땅에서, 귀신도 아닌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 그것도, 어린아이가 돌아다니는 모습은 여기 오고 나서 처음으로 보는 광경이었기에.아이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할때도, 구조대원은 한동안 벙찐 얼굴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저기....어...너, 어디서 온거니..?" 겨우 정신..